노르웨이 석유·가스 사업 주도 에퀴노르社오페달 회장 인터뷰
조재희 기자 강다은 기자
“노르웨이가 지난 50여 년간 북해 석유·가스전에서 2조달러(약 2750조원)를 벌었지만, 그 첫 시추공은 아무것도 나오지 않은 건공(dry hole)이었습니다. 실패로 시작했죠. 석유·가스 탐사는 어렵
고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입니다. 정부와 국민 모두 서두르지 말고 차분하고 끈기 있게 추진해야 합니다.”
노르웨이를 유럽의 평범한 국가에서 1인당 국내총생산(GDP) 기준 세계 4위의 부국(富國)으로 만든 북해 석유·가스전을 운영하는 에퀴노르(Equinor)의 앤더스 오페달(Opedal) 회장이 출장차 한
국을 방문, 12일 서울 종로구에 있는 에퀴노르 한국지사에서 본지와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 최근 가장 뜨거운 주제로 떠오른 동해 영일만 심해 가스전을 중심으로 에너지 산업·정책 전반에 대해 물었다. 오페달 회장은 석유·가스 개발 전문가로 글로벌 시추 서비스 기업인 미국 슐럼버제이를 거쳐 1997년부터 에퀴노르의 전신인 스타토일(Statoil)에 합류했다. 2020년부터 회장 겸 최고경영자(CE
O)를 맡고 있다.
-최근 동해 영일만에 석유·가스가 묻혀 있을 가능성이 발표된 뒤 논쟁이 뜨겁다. 노르웨이의 석유·가스 개발 역사는 어땠나?
“1959년 네덜란드 흐로닝언에서 유전이 발견된 뒤, 북해 탐사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정부가 주도해 1965년 78개 광구에 광업권을 내주면서 본격적으로 탐사에 나섰다. 하지만 1966년 여름에 뚫
은 첫 시추공은 건공으로 판명됐고, 1967년엔 석유가 나오기는 했지만 경제성이 없었다. 본격적인 탐사에 나선 지 4년이 지난 1969년에야 첫 석유·가스전을 발견했고, 1971년부터 생산을 시작했
다. 전신인 스타토일이 생긴 1972년부터 따지면 지난 50여 년의 매출은 2조달러에 이른다.”
-자원 개발 초기 노르웨이의 분위기는 어땠나?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고 들었다.
“맞다. 1950년대 말까지도 노르웨이 근해에 석유나 가스가 매장돼 있을 거라고 믿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탐사 초기엔 실패도 이어졌다. 하지만 노르웨이는 업계와 정부, 정치권 등 모두가 자원 개발
을 통해 얻는 이익이 국민에게, 특히 후대에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는 데 동의했고, 국부 펀드를 조성했다. 노르웨이 석유·가스 개발에서 이것이야말로 가장 성공적인 점이었다.”
-석유·가스가 노르웨이를 어떻게 바꿨나?
“석유·가스가 발견되기 전만 해도 노르웨이는 국민이 돈을 벌러 이웃 국가 스웨덴으로 가는 나라였다. 1인당 GDP는 스웨덴의 절반 수준이었다. 하지만 유전이 발견된 뒤로는 유럽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나라가 됐고, 세계적인 부국으로 성장했다. 이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벌어지면서 러시아에서 유럽으로 오는 가스가 끊어지자, 생산량을 늘리며 유럽 에너지 안보에 기여하고 있다.”
-한국은 자원 개발 역사도 짧고, 경험도 거의 없다 보니 동해 영일만 개발을 두고 논란이 많다.
“석유·가스 탐사를 위해선 지질학적인 연구도 필요하고 시추 기술도 있어야 한다. 수천m 밑에 있는 무엇인가를 찾아내는 일인 만큼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상당한 전문성과 지치지 않는 체력
이 요구된다. 정부와 공기업은 뚝심 있게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정치권과 국민들은 차분하게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 한다. 노르웨이의 개발 경험으로부터 한국이 배울 것이 있을 것이다.”
출처: 조선일보 https://www.chosun.com/economy/industry-company/2024/06/13/UBV6MHLUBZHKRJTS65LL4WSBOU/ (기사 확인은 아래 “원본기사 바로가기” 버튼을 눌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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