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상욱 언론인 승인 2024.06.13 16:52
<[단독] 액트지오 부랴부랴 국내 홈페이지 개설 … 의혹 잠재울까>
뉴스1이 ‘단독’ 타이틀을 걸고 6월10일 오전 10시31분에 송고한 기사이다. 그 뒤로 같은 내용을 다룬 보도들이 잇따른다.
<액트지오, ‘동해가스전 유망하다’… 국내 홈페이지 개설>(뉴시스), <급히 국내 홈페이지 만든 액트지오… “산유국 꿈을 응원합니다”>(SBS), <“약장수 같다” 비난에 “유전성공율 높다” 韓 홈페이지 만든 액트지오>(중앙일보), <포항 영일만 석유가스 매장 가능성 분석한 美액트지오, 한글 홈페이지 개설>(조선비즈)
오후 3시쯤부터 상황이 바뀐다. 한국석유공사가 ‘액트지오는 한글 홈페이지 도메인을 갖고 있지 않다’고 공식 확인을 한 것이다.
<“동해 유전 성공률 대단히 높다” 액트지오 한국 홈피, 알고보니>(이데일리), <“유전 성공률 높다” 소개한 액트지오 韓 홈피, 사칭이었다>(중앙일보), <액트지오 한글 홈피 ‘가짜’였다… 아브레우 대표 방한 당일 급조된 도메인>(jtbc), <액트지오 한글 홈페이지는 가짜… 도메인 판매업자 소행 추정>(조선비즈, 정재훤), <‘액트지오’ 한글 홈페이지, 누가 만들었나… 석유公 “회사와 무관”>(뉴스1)
‘한글판 액트지오 홈페이지’라는 웹사이트를 발견해 최초로 알린 건 1인 미디어 ‘뉴스포터’
‘한글판 액트지오 홈페이지’라는 웹사이트를 발견해 페이스북에서 최초로 알린 건 1인 미디어 ‘뉴스포터’이다. 뉴스1의 최초 보도가 있기 3시간 쯤 전이다. “액트지오 한국어 사이트? 아무래도 누군가 도메인 세일하려고 얼른 만든 것 같습니다. 정말 난리네요.”라는 단서를 달고 있다. 그런 단서를 첨부한 이유는 해당 홈페이지의 ‘VIDEO OVERVIEW’ 공지란에 “도메인/웹사이트 판매합니다”라고 적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독>임을 내세운 최초 오보를 시작으로 줄줄이 오보가 쏟아졌다. 한국석유공사가 오보임을 확인해주기 전까지 ‘도메인 판매를 노린 사이버스쿼트’로 의심된다고 보도한 언론은 없었다. 발견한 순간부터 상업용 저의가 의심된다고 판단해 경고를 날린 1인미디어 뉴스포터와 석유공사 오보확인 때까지 수십 건의 오보를 이어간 기성 언론의 차이는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10일 오후 3시 쯤 석유공사의 해명을 전하며 오보를 정정하는 기사들이 시작됐지만 당일 오후 5시30분경에 액트지오가 국내 홈페이지를 개설했다고 버젓이 오보를 이어 나간 언론사도 있다. 오보 기사가 사흘이 지나도록 수정·삭제없이 검색되는 신문들도 있다. 어느 언론사는 10일 낮 12시에 “업계 등에 따르면”으로 출처를 대면서 오보를 내보냈는데 역시 사흘 지나도록 삭제나 수정 없이 검색돼 나온다.
액트지오 이름을 딴 한국판 홈페이지가 개설됐다고 업계에서 먼저 소문이 돌았다는 건…타 언론사 기사를 무단전제했다는 비난을 피하려 적당히 둘러댄 것으로 밖에 볼 수없다.
액트지오 이름을 딴 한국판 홈페이지가 개설됐다고 업계에서 먼저 소문이 돌았다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타 언론사 기사를 무단전제했다는 비난을 피하려 적당히 둘러댄 것으로 밖에 볼 수없다. 복사해 붙이기, 이른바 ‘복붙’을 사용하면서 통신사 전재라고 밝히지 않는 언론사가 즐비한데 이 정도면 차라리 성의가 있다고 해야 하는 것일까?
통신사 발 기사를 시작으로 이어진 오보
통신사 발 기사를 시작으로 오보가 이어졌지만 통신사 기사를 전재하거나 인용한다는 설명 없이 직접 취재해 쓴 것처럼 보도한 언론사들이 다수다. 우리 언론이 관행적으로 벌여 온 ‘받아쓰기’는 보도자료 옮겨쓰기, 정치인 발언 받아쓰기, 유명인의 SNS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옮겨 담기, 기사도용과 표절 등여러 형태로 진화해 왔다. 여기까지는 어쨌든 ‘쓰기’의 영역이다. 그러나 부분이 아닌 문장이나 단락, 또는 전체 기사를 “복사해 붙여넣기”로 처리할 때 이것을 ‘기사 작성’의 영역이라 불러야 할까? 그러면서도 기사 밑에 ‘무단전재를 금한다’라는 경고가 붙어 있다.
타사 보도의 핵심 내용을 발췌·인용하면서 출처를 밝히지 않는 것은 이미 고질적 관행으로 굳어졌고, 타사의 단독 보도인 경우에도 언론사 이름을 밝히지 않고 ‘언론 보도에 따르면’으로 둘러대는 것도 흔히 볼 수 있다. 통신사 기사의 경우 계약사든 비계약사든 받아써도 되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확인할 수 있다면 확인하고 취재원으로 여겨 추가 취재를 거쳐야 이번과 유사한 소동을 피할 수 있다. 그러나 규제조항이 필요하고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논의가 무의미할 만큼 무너져 버린 게 오늘의 우리 현실이다.
이런 소동이 벌어지고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언론의 신뢰는 깎여 나가고 열심히 성실하게 취재해 보도하는 동료들까지 ‘기레기’라는 멸칭으로 상처를 입는다. 언론 스스로 독자를 기만하는 퇴행적 현실과 관행을 이어간다면 저널리즘이 설 자리는 없다. 직업윤리 없는 직종이 존중 받을 이유도 없다.
출처: https://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8708 (기사 확인은 아래 “원본기사 바로가기” 버튼을 눌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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