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2015.11.13 21:12 입력 2015.11.13 23:51 수정
영국 지질학자 레고, 북한 전역 석유 탐사 자료 첫 공개
“원유·가스 상업적 생산 이뤄지지 않다니 놀라울 지경”
1998년 11월 방북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고 돌아온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평양이 기름 위에 떠 있다”고 말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정 회장은 김대중 대통령을 만나 “북한 석유를 들여오기 위한 파이프라인 가설작업을 곧 시작하겠다”며 북한의 석유 부존(賦存) 가능성을 확신했다.
잊을 만하면 나오는 ‘북한 석유’…도대체 얼마나 묻혔나
당시 학계나 업계는 북한에 석유가 존재할 가능성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1997년 북한은 일본에서 ‘조선유전설명회’를 개최하면서 석유 부존 가능성을 설명했다. 공개한 내용이라고는 하루에 450배럴을 생산할 수 있는 유전을 하나 발견했다는 내용이 전부였다. 하루에 최소한 2만배럴은 생산해야 경제성이 있다. 그 기준에 비추어 보면 미미한 양이다. 스웨덴, 호주, 영국 등의 석유 개발사들이 북한 유전 탐사에 투자했다가 줄줄이 짐을 싸고 돌아갔다. 결국 북한이 불확실한 석유 매장량을 뻥튀기하며 외자유치만 유도한다는 의혹도 있었다.
그래도 북한에 상업적으로 생산할 만한 석유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은 잊을 만하면 한번씩 제기됐다. 정보가 제한돼 있지만, 북한과 함께 일했던 학자와 사업가들은 꾸준히 수백억배럴의 석유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을 언급하곤 했다. 정말 북한에 개발할 가치가 있는 유전이 있는 걸까?
잊을 만하면 나오는 ‘북한 석유’…도대체 얼마나 묻혔나
영국 지질학자 마이크 레고(사진)는 석유 분야 지구과학 전문지 ‘지오엑스프로’ 9월호를 통해 ‘북한 석유 탐사와 잠재력’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레고는 “북한 육지와 바다에 원유와 천연가스가 존재한다는 많은 증거가 있다”며 “북한에서 원유와 가스의 상업생산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 놀라울 지경”이라고 썼다.
여기까지는 학자와 사업가들의 기존 증언과 동일하다. 하지만 레고는 어마어마한 매장량을 어림잡는 대신, 몇 가지 증거를 내놓으면서 자신의 주장을 차별화했다.
영국 석유회사 BP에서 수년간 근무한 레고는 영국 석유개발회사인 아미넥스에서 탐사분야 최고 책임자로 일했다. 아미넥스는 2004년 북한 조선원유개발총회사와 20년간 원유를 탐사하고 개발하기로 계약했던 업체였다. 아미넥스도 2012년 북한에서 철수했지만, 레고는 계약 기간 동안 북한 현지에서 탐사 작업을 진두지휘했다.
북한은 앞서 계약을 맺었던 호주, 싱가포르 등 업체에는 특정 지역 탐사 권한만 줬지만 아미넥스에는 북한 전역 탐사권을 줬다. 덕분에 아미넥스는 1960년대부터 2000년대 이전까지 이뤄진 북한의 석유 탐사 관련 자료를 모두 제공받았다. 레고는 보고서 앞부분에서 “1970년대부터 만들어진 디지털 포맷의 탐사 자료들은 1990년대 창고 화재로 대부분 소실됐지만 다행히 남아있는 아날로그 자료들이 있어 복원에 성공했다”고 했다.
레고가 북한에서 석유 및 천연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지역은 7곳이다. 내륙은 평양, 재령, 안주~온천, 길주~명천, 신의주 유역 등 5곳이다. 해양에서는 서한만과 동해 유역을 꼽았다. 그간 원유 매장 가능성이 있는 곳으로 풍설에 이름을 올리던 나선과 온성 유역이 빠진 대신 재령과 신의주 유역이 포함됐다.
레고는 북한이 이들 유역 대부분에 탄성파 탐사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원유가 묻혀있는지 알기 위해서는 먼저 땅속에 퇴적층이 있는지 확인하고, 원유나 가스로 변하는 근원암을 찾아내야 한다. 또 대기보다 가벼워 지층의 틈을 타고 지표면으로 올라오는 원유나 가스의 움직임을 포착하는 것이 중요하다. 탄성파 탐사는 이 같은 원유 탐사의 기초 과제들을 한 번에 해결하는 방법이다. 지표면에서 진동이나 음파를 땅속으로 보내 되돌아오는 신호를 기록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레고는 탄성파 탐사 자료를 분석해 서한만 유역의 3개 지층에서 원유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있는 지층 구조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또 “재령 유역 시추공에서 원유를 확인했다”며 관련 사진도 공개했다. 레고는 2004~2005년 재령 유역 서부의 대동강 부근에서 지표면으로 원유와 가스가 유출되는 현상을 촬영했다. 한 장의 사진은 땅속에서 표면까지 올라온 원유가 물과 섞여 가로 50㎝의 기름막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한 장의 사진에서는 원유 주변에 가스 거품이 이는 현상이 포착됐다.
충북대 이철우 교수(지구환경과학과)는 13일 “원유나 가스가 위로 올라가지 못하게 막아주는 덮개암을 만나지 못하면 지표면으로 올라오는 경우가 있다”며 “이들 사진은 북한에 원유가 매장돼 있다는 주장의 신빙성을 높이는 근거로 사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레고는 “길주~명천 유역의 경우에는 가스가 부존할 가능성이 높다”며 “한 시추공에서 가스와 원유의 유입이 있었다는 기록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레고는 길주~명천 유역에서 지표면 밖으로 노출된 두꺼운 셰일층을 답사한 사진도 함께 게재했다.
레고는 북한 동해안 유역을 “명백히 많은 잠재력을 가진 곳”이라고 평가했다. 동해로 흘러가는 큰 강들이 지속적으로 퇴적물을 공급하는 것도 좋은 조건 중 하나다. 동해 연안의 도시 김책 인근에서 원유의 해수면 유출로 볼 만한 현상들이 발견된 것 역시 고무적인 증거로 제시됐다. 특히 레고는 동해 유역의 서부에 위치한 동한만의 탄성파 탐사 그래픽 자료를 공개했다. 자료에는 기울어진 단층, 구조트랩 등 통상 원유가 매장된 지역에서 나타나는 지층의 특징들이 다수 포착됐다.
석유 탐사와 관련된 북한의 자료가 외부에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북한은 국가기밀이라는 이유로 투자자들에게조차 탐사 자료를 공개하지 않았다.
이철우 교수는 “공개된 자료를 통해 추정해 보면 북한은 원유 탐사 과정에서 유망한 광구를 도출하는 작업을 앞둔 상태로 보인다”며 “북한 입장에서는 시추까지 착실히 작업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출처: 경향신문 – https://www.khan.co.kr/economy/industry-trade/article/201511132112145 (기사 확인은 아래 “원본기사 바로가기” 버튼을 눌러주세요)
혹자는 북한의 매장량이 세계 8위, 누구는 세계 3위 정도라고 하는데, 같은 땅덩어리에 붙어있는 남한도 꽤 많이 뭍혀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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